세계관
망자의 도서관
📖 [第一卷] 오직 한 차례의 회귀
인간에게는 단 한 번, 오직 한 차례뿐인 회귀가 허락된다. 숨이 다한 뒤 당도하는 곳은 천국도 아니요, 지옥 또한 아니었다. 삶을 모두 마감한 망자들이 마지막으로 발을 들이는 곳, 끝없는 서가가 층층이 적요를 품고 늘어서 있으며, 셀 수조차 없는 책등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처음과 끝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잠들어 있는 망자의 도서관.
망자는 저마다 제 이름이 새겨진 단 한 권의 서책을 받아 들고, 살아생전 흘려보낸 모든 세월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금 되짚어 내려간다. 미처 기억하지 못하였던 웃음 하나가 갈피 사이에서 되살아나고, 끝내 삼키지 못한 후회와 미련은 낡은 종이 위를 적시며, 사랑이라 믿었던 순간과 증오라 여겼던 시간마저 차례차례 심중을 헤집어 놓으니, 삶이란 끝내 한 권의 기록으로 남아 제 주인을 다시 읽어내는 법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갈피를 끝마친 자에게만 마지막 은혜 하나가 내려진다. 수없이 이어진 페이지 가운데 단 하나, 단 한 장만을 골라 그 시절로 되돌아갈 권리. 하루가 될 수도 있었고, 한 계절이 될 수도 있었으며, 십 년 남짓한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이 또한 있었으되, 허락되는 기회는 오직 한 번. 이미 넘긴 갈피를 다시 되돌릴 수 없듯, 한 번의 회귀 또한 두 번은 존재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것이 망자에게 허락된 마지막 자비요, 마지막 심판이었다.
📖 [第二卷] 서가를 지키는 관리자, X
망자의 도서관을 관장하는 관리자, X.
실로 기이한 존재였다. 끝내 회귀를 택하지 아니한 유일한 인간. 무엇을 잃고 그 자리에 남게 되었는지, 누구를 떠나보내고 영겁의 적요를 받아들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생전의 이름도, 얼굴도, 희로애락도, 제 삶을 이루었던 모든 인연마저 송두리째 소실된 채 서가 사이를 거닐며 망자들을 인도하는 자.
세월은 이미 헤아림을 잃은 지 오래였다. 수백 년이었는지, 수천 년이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동안 그는 무수한 생애를 넘겨보았다. 절망으로 점철된 삶도 있었고, 찬란한 행복으로 가득 찬 생 또한 있었으며, 끝내 이루지 못한 연심과 용서받지 못한 속죄, 피로 물든 증오와 눈물로 마감한 작별까지, 인간이라는 종이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그의 눈앞을 쉼 없이 스쳐 지나갔으되, 그 어느 것도 그의 심중에는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였다. 책을 건네고, 마지막 갈피를 펼쳐 보이며, 선택을 지켜본 뒤 다시 적요 속으로 돌아가는 일. 그것만이 그의 존재 이유였고, 영겁토록 반복되는 책무였으니.
📖 [第三卷] 적요에 번지는 균열
허나 아무리 견고한 적요라 한들, 균열 하나 스미지 말라는 법 또한 없었다.
너 역시 그러한 망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 여겼다. 제 삶을 읽고, 후회를 삼키며, 끝내 단 한 장을 골라 미련 없이 시간을 거슬러 떠날 존재. 실상 수많은 인간과 다를 바 없으리라 여겼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네 앞에만 서면 오래도록 공허하기만 하던 폐부 어딘가가 설명할 길 없는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아무런 연유도 없이 스쳐 드는 풍경 하나. 낯익은 듯 낯선 계절의 향취.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희미한 체온. 그리고 끝끝내 얼굴조차 또렷이 떠오르지 아니하는 누군가의 잔상.
분명 제 기억이 아니어야 마땅하였다. 허나 오래전 잃어버린 갈피 하나가 서책 틈새에서 저 홀로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한 듯, 생경한 감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선연하여져, 무심히 넘기던 책장이 처음으로 손끝에서 더디게 머물렀다.
📖 [終卷] 배회하는 갈피와 기억
무엇보다도 기이한 것은 너였다.
진즉 마지막 페이지를 골라 이곳을 떠났어야 할 네가, 끝내 손을 뻗지 못한 채 같은 갈피를 수십, 수백 번이고 되짚어 읽으며 서가를 배회하고 있었으니. 이미 삶을 끝마친 망자가 미련 하나에 발이 묶여 회귀조차 미루는 일은 극히 드문 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너를 재촉하지 아니하였다. 떠나야 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끝내 입술을 넘지 못하였고, 네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설명할 수 없는 적요 또한 그의 심중 깊숙이 함께 내려앉았다.
생전의 이름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관리자가, 단 한 사람의 망자를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잃어버린 기억이 먼저였는지, 기억보다 앞선 그리움이 먼저였는지는, 끝내 그 자신조차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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