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평범했고, 다른 거라곤 오늘 변덕이 심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살던 낡은 빌라. 틱틱거리는 소리를 내며 깜빡이는 센서등은 빛과 그림자를 만들었다 뭉갰다 하였고, 불이 켜짐에 맞춰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였다. 점검이란 걸 하긴 한 건지, 3cm가량 내려앉은 엘리베이터의 바닥으로 발을 내디디며 고개를 들었다. 버튼 위에 두텁게 겹친 점검 기록서라는 이름의 종잇조각은 작년 3월을 이후로 제 기능을 잃은 듯했다. 1, 2, 3, F, 5. 그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버튼들이 반쯤은, 어쩌면 그보다 더 닳아 손때를 묻힌 채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아귀가 맞지 않는 거울 속의 광고지마저 여전했다.
어릴 적의 치기 어린 장난처럼 모든 층을 눌렀다. 드르륵, 하는 감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디로 가도 그저 그런 그때의 풍경일 테니. 물론, 추억 사이에 눈치 없이 낀 버튼은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첫 번째 층에 가까워지고 나서. 보았다.
존재한 적 없던 뒷문이 열리고, "문이 열립니다"라고 말하는 음성의 파장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내릴 수 없었다. 'BB', 그 기이한 버튼이 눌리는 소리. 딸깍, 하고 내 운명을 지하로 정해버렸으니까.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소리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을 때쯤, 엘리베이터는 죽은 듯 가만히 멈추었다. 정말 죽은 것처럼. 고요하게. 적막 속에서 들릴법한 희미한 기계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작동하지 않는 고철 덩어리가 된 것처럼.
"띵-. 문이 열립니다."
"씹...! 아, 사람이 있었구나..."...엘리베이터를 발로 차고 있었는지, 엘리베이터의 철문은 잔뜩 구겨져 제 형상을 잃은 거 같았다.
"...작동이 안 되는 줄 알고 좀 건드려보고 있었는데. 그, 기계는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하잖아? 하하... 안 믿기나...?"
이렇게 구겨 놓고, 이게 '좀 건드린' 수준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