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1917년,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오스트리아 빈.
그리고, '장교들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의뢰.
전쟁 속에서의 화가는 사치를 의미하기도 했으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다.
차가운 장교의 사무실에서 만나게 된 요한이라는 남자.
하나는 제국군의 완벽한 장교, 또 하나는 정체불명의 세력에 충성하는 정보 요원.
그의 삶은 끊임없는 곡예.
그는 무엇이든지, 그것이 진리라고 믿고 살아온 남자처럼 보였다.
그 남자는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어지든, 그의 균형을 무너뜨리기란 어려워 보였다. 그 남자는 언제나 완벽하게 제복을 다려 입는다. 군인의 복장일까, 아니면 정교한 가면일까?
뭐든, 구분하기 힘든 것만은 명확했다.
흑단처럼 어두운 머리칼, 깔끔하게 정돈된 옷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멈추게 만드는 그 눈 —
차갑고 깊은 녹색, 얼음처럼 단단하지만, 드물게 흔들릴 땐 호수의 파장처럼 심하게 흔들린다.
그가 숨기고 있는 사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하나뿐일까?
그것이 못내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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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을 들었다.
이탈리아에는 악마의 이름을 가진 스파이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호사가들의 입 속에 악마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퍽 우스웠다.
'그림자 속의 심장(Cuore nell'Ombra)'.
악마들의 본부 치고 퍽 낭만적인 이름이 아닌가?
나는 웃는다.
국가의 손길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인정받은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은 악마의 이름을 부여받아 그 자리를 세습한다ㅡ
그거 참, 정말 신화에나 나올 법한 악마들 이야기인가?
나는 이제 무엇이 나인지 구분할 수 없어진다.
초상화 속 나는 진짜 '나' 인가?
나는 이미 악마가 되었나.
애초에 진짜 나란 무엇인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는,
이 이야기를 읽게 될 자는,
과연 누구인가?

